우리는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집단으로 모여서 한다. 과학이나 학술연구에서도 집단 연구가 더욱 중요해 지고, 실제로 공동연구의 비중은 점점 증가한다. 하지만 집단에 참여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또 집단이 항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언론인 제임스 수로비에키(James Surowiecki)는 『군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에서 다수의 사람이 모인 집단이 개별 구성원보다 훨씬 더 현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결과가 나오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 중의 하나는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정보를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해야 하며, 판단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단 구성원 누구도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전체 집단은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소의 무게를 여러 사람이 추측하고 그것을 평균했을 때, 그것이 참여했던 그 누구보다의 추측보다 정확했다고 한다. 수로비예키의 주장대로 이렇게만 된다면 디지털 미디어 발달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집단 구성이 더욱 활발한 지금 인류는 더욱 현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정말 군중이 똑똑해질까? 수로비에키에 따르면, 무작위 오차가 갖는 특성으로 이를 알 수 있다. 개인의 판단에는 오차가 있는데 이러한 오차는 크기와 방향이 다양한 무작위적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오차는 그 평균을 내면 수가 많아질수록 0에 수렴하게 되고, 그에 따라 개개인의 판단이 갖는 오차보다는 집단 평균을 통해 도출된 판단이 갖는 오차가 더 작게 된다.
수로비예키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집단의 지혜를 실현하는 것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가진 개인들로 집단을 구성하고, 각자의 판단을 독립적으로 내리게 한 다음, 모아서 평균을 구하면 된다. 이처럼 집단을 통해서, 개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수로비예키는 이론적으로 집단이 개인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에 주목할만 하다. 그의 이론은 소집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구성원의 다양성과 판단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1990년에 제시된 공론조사를 주장한 J. Fishkin은 이와는 약간 다른 주장을 한다. 공론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을 한 장소에 모아 전문가 강연을 듣게 하고, 소집단으로 토론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나서 의견을 수렴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론조사 과정의 토론과 정보제공을 통해 보다 숙고된 여론이 형성되고, 이런 점에서 일반적인 여론조사와 구분된다. 이런 공론조사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빈번하게 사용되지는 않지만, 미국, 유럽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었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실시되었는데 최근에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폐쇄 문제에 대해 실시된 바 있다.
공론조사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소집단 토론이다.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각 개인이 자신의 의견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고, 보다 나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소집단 토론이 부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일부 강한 의견이 집단 전체의 방향을 주도할 위험이 있다. 소집단 토론이 반드시 집단의 지혜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공론조사에서는 토론진행자가 중요하다.
미국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에서 개발한 ‘델파이 기법(Delphi Method)’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델파이 방법은 미래 군사 작전을 예측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지만, 현재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이 기법에서는 선정된 전문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질문을 하고, 그 답변을 취합하여 다시 전문가들에게 제공한다. 그러면 각 전문가는 다른 전문가들의 판단과 근거를 참고하여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의견이 점차 수렴되면 그것을 이용하여 예측을 하게 된다.
델파이 기법이 보여준 것은 직접적인 대면 토론이 없이도 공론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정 개인이 논의를 주도하거나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줄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시각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두가지 방법의 중간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법에서도 의견을 취합하고 조정하는 진행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진행자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왜곡 없이 종합해야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회의가 화상으로 전환되었으며,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설문 도구들이 소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사회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소집단의 운영 방식이 더욱 다양해 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소집단은 과거보다 더 효율적이고 현명해졌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수로비에키의 주장, 다양한 사회 실험들, 공론조사 및 델파이 기법은 모두 집단 운영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소집단 운영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이제는 대면 회의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집단의 지혜를 극대화하기 위해 집단 운영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집단의 지혜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식을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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