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ank You for Smoking』은 담배 회사의 대변인 닉 네일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블랙코미디다. 그는 사회적으로 해롭다고 여겨지는 담배 산업을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방어한다.
1. 담배회사 대변인의 논리: 선택권 존중과 정보 제공
닉 네일러의 설득은 'informed choice', 즉 충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설득자는 강요하지 않고, 다만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지를 보여 주기만 한다. 즉 설득이 아니라 단지 상대가 informed choice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논리는 단지 그의 설득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아들이 담배를 피우겠다고 하면 자기가 먼저 담배를 사주겠다고 하는 그의 답변에서도 알 수 있다.
닉의 설득은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주는 정보제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감정, 인지적 편향, 사회적 압력 등 수많은 요인이 판단에 개입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이상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자칫 의견조종을 합리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환경운동가에게 뇌물 줄 때를 살펴보자.
2-2. 인간 심리와 선택의 불균등: 카네만 이론
닉 네일러는 환경운동가에게 돈을 줄 때 그것을 바닥에 모두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갖던, 그게 싫으면 받고 나서 미디어에 폭로하던, 당신의 선택이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이 닉의 설득기술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가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인간 심리를 정교하게 계산하고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네만(Daniel Kahneman)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가치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큰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 불리는 경향이다. 이미 손에 들어온 돈을 다시 포기한다는 것은 애초에 받지 않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더 힘들다. 그리고 가방에 든 상태로 돈을 보는 것과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또 다르다. 닉은 이런 인간심리를 활용한다. 겉으로는 두 개의 선택지를 제공했지만, 선택지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이미 특정한 방향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맥락 조작은 상대의 결정을 조작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또 그의 담배 경고문구에 대한 견해를 보자. 닉은 흡연의 위험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경고문구 부착이 자율적인 판단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치즈, 초코릿, 술, 자동차 등도 과도하게 소비하면 해롭지만 유독 담배만 경고문을 붙이는 것은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흡연으로 인한 피해는 경고문이 아니라 교육의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충동 구매'라는 말이 있듯 반드시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 보통의 인간들은 교육만으로는 스스로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인지적 편향과 감정, 시간 압박 등 다양한 제약 속에서 판단하게 되고, 결국 합리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지를 보여줄 뿐"이라는 태도는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의 판단을 교묘하게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닉이 주장하는 선택의 자유는 흡연자의 이익보다는 거대 담배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아닐까?
5-3. 역사적 비유: 송나라와 청나라의 선택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제공을 둘러싼 논의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우리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나타난 두 국가 체제를 비유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송나라는 통금이 없고 상업이 발달했으며, 신분에 관계없이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제도적 개방성을 보여줬다. 이는 형식적으로 자유주의적 질서를 지향한 사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책을 사서 공부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없는 이들에게 과거는 여전히 먼 이야기였으며, 자유는 실질적으로 불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이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보와 기회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계층적으로 다르다는 현실과 유사하다.
반면, 청나라는 국가가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가 강하게 작동한 사회였다. 황제는 때때로 관료보다 백성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였고, 제도는 보호주의적 색채를 띠었다. 그러나 이 역시 표현과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동반했다. 보호는 있었지만, 동시에 구속도 따랐다.
이 두 사회는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제약'의 송나라와 '도덕적 보호와 정치적 통제'의 청나라라는 방식으로 대비될 수 있다. 이 비교는 역사학적 정설이라기보다는, 자유와 보호라는 가치의 충돌을 문화적 맥락에서 설명하는 하나의 은유다. 어떤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둘 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정보는 넘치지만 판단 능력은 균등하지 않고, 표현은 자유롭지만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은 모호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택의 자유와 시행착오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존은 수많은 개체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전제로 한 선택의 축적이다. 보호주의는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억제한다.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동시에 진화적 다양성과 가능성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며 우리는 정보의 홍수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추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선택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지를 제공받는 방식은 선택할 수 없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진정한 ‘결정’은 점점 기계가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완벽한 판단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제다. 비록 thank you for smoking의 닉네일러가 주는 선택의 자유가 실질적인 선택이 아닐지라도 그런 형식적인 선택권마저도 귀중하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실질적인 선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나마 남아 있는 형식적인 선택권마저 없애서는 안 된다.
모두가 인공지능의 지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선택이 없는 상태다. 정보는 넘쳐나고, 표현의 자유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실질적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자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커뮤니케이션과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더 퀸』, 여론을 어떻게 따라야 하나 (0) | 2025.05.20 |
|---|---|
| 에린 브로코비치- 진정성은 반복 속에 (0) | 2025.05.13 |
| 《My Fair Lady》와 GPT: 언어가 인간을 바꾼다 (1) | 2025.04.29 |
|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토론이 갖는 힘 (0) | 2025.04.22 |
| 〈라쇼몽〉에서 〈빨간모자의 진실〉까지: 진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 GPT 시대의 소통과 서사에 대한 성찰 (0) | 202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