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Debaters는 러닝타임이 긴 편이고, 배경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다. 흑백 차별이 제도적으로 작동하던 사회를 다루고 있어,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보았지만,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토론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하고,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시대적 맥락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만들어 내는 긴장과 질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관객을 끌어당긴다.
이 영화는 흔히, 흑백 차별 시대에 흑인 대학 토론팀이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사회적 변화를 시도하는 이야기로 소개된다. 토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설득의 수단이며, 사회 변화를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도 많다. 이러한 해석은 타당하며,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점은, 토론이 언제나 정의를 실현하거나 사회 변화를 보장한다는 메시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의 마지막 토론 장면은, 토론이 무엇을 ‘이기느냐’보다 우리가 무엇을 전제로 판단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토론에서 쟁점은 겉으로 보면 “법은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법을 지킨다는 선택이 과연 가치 중립적인가, 혹은 어떤 가치와 어떤 질서에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장면에서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노출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토론의 강점은 진리를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토론은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판단들이 어떤 가치와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게 만든다. 물론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수용되거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론의 결과는 단순한 호기심의 만족으로 끝날 수도 있고, 개인이나 사회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변화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토론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토론은 혼자서는 하기 어렵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겨 온 생각을 스스로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토론은 상대가 있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반대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때 생각은 더 정교해지고, 자신이 서 있는 전제는 더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토론이 언제나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 비대칭이 크거나, 평등한 조건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토론이 오히려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도 있다. 무늬만 토론이 진정한 토론이 아니듯, 형식만 갖춘 토론은 자기 자기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토론의 핵심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의지다. 그런 의지가 있을 때 토론은 좋은 방법이 된다. 그러나 그 의지가 없다면, 토론은 객관화를 가장한 정당화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토론은 중립적인 도구이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의식은 오늘날 AI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AI 시대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AI가 인간을 대신한다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체적 판단을 AI가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주체적 판단을 대신한다는 것은, 주어진 정보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힘을 외부에 맡긴다는 의미다.
이 점은 통계 분석을 둘러싼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얼마 전 나는 통계 분석 방법을 AI를 활용해 설명한 적이 있다. 강의 후에 해당 분야의 교수 한 분이 AI의 편리함에는 공감하면서도,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결과가 정말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통계 분석은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절차와 규칙을 갖춘 분야다. 기존의 통계 도구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검증해 왔다는 신뢰가 있다. 반면 AI가 제시한 분석 결과는 편리하지만, 그 과정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였다.
이 경험은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AI가 분석을 대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분석을 검토하고 정합성을 따지는 역할을 누가 수행하는가가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AI의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분석 결과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과 수치 간의 정합성을 점검하도록 맞춤형 AI를 설계해 사용해 보았다. AI의 분석결과를 그대로 받아서 자동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검증 과정을 거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판단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며 살아간다. 의료적인 진단을 의사가 대신한다고 해서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대신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얼마나 알려져 있는가에 있다. 의사는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절차에 따라 판단하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지는지가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AI는 무엇을 얼마나 대신 판단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는지, 어디까지 신뢰해도 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핵심은 아마도 이 불확실성에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AI는 피할 수 없다는 감각을 준다. 교육도 제도적 교육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의사를 바꾸거나 자가 치료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는 사회의 기본 환경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선택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선택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인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도 알기 어려운 상태, 다시 말해 불확실성 그 자체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이러한 불확정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제시해 줄 등불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토론에서 배웠듯이, 주어진 결과를 집요하게 검토하고,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며, 스스로 납득 가능한 기준을 만들어 가는 태도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늘어나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까지 자동으로 제공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AI가 제공하는 정보 그리고 그에 따른 판단을 검증해야 한다. 확실한 답을 갖지 못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의심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The Great Debaters가 보여주는 토론의 장면은, 바로 그 인간적 역할이 여전히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토론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기보다, 토론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보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생각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전히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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