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할 때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가진 틀로만 들으면 놓치는 것이 있고,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의 입장이나 시각으로 상대방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듣거나 볼 때, 사진 찍듯이 들어오는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프레임 (frame) 또는 스키마(schema)를 통해 정보를 재구성하고, 각자가 가진 틀에 따라 같은 내용을 다르게 듣고 이해한다. 한 실험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를 다시 적어도록 했을 때, 없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고, 있던 내용이 빠지기도 했는데, 이는 각자의 경험과 배경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전달 게임을 할 때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즉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전하고, 이 말을 계속 전달하다가 마지막 사람이 처음 들은 말을 해 보면 달라진 경우가 적지 않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나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도 결국 이런 프레임의 작용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프레임은 상대방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에 주목할지를 정해준다. 특히 습관적으로 행동할 때나, 극도의 불안과 같은 강한 감정 상태에서는 프레임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그렇다면 경청이란 우리가 가진 이러한 프레임의 영향을 덜 받도록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들리지 않던 것도 들리게 될 것이다.
디지털 환경과 경청의 변화
디지털 환경이 되면서 우리는 주의 깊게 듣는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 녹음기나 녹화 장치가 들을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적극적 듣기 능력을 약화시킨다. 과거에는 상대가 한 말의 핵심을 파악해서 기억하려 노력했다면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회의나 강의 시간에 집중하지 않아도 녹음한 것을 들으면 된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수동적으로 듣게 되고, 그만큼 프레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된다.
또한 우리는 듣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듣기도 하지만 외부 자극에 의해 생각이 끌려가기도 한다. 프레이밍(Framing)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는 특정 프레임을 사용하여 사건을 보도하고, 이런 미디어 프레임은 보는 사람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특정 사건을 외교적 관점으로 볼 것인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볼 것인지, 후보자를 선택할 때 경제적 발전이라는 틀로 후보들을 비교할 것인지, 도덕성이라는 틀로 비교할 것인지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프레임 중에 특정 프레임이 외부 자극으로 활성화되면, 우리는 그 프레임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경청이 다른 사람이 활성화한 또는 상대방이 원하는 프레임으로 듣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상대방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듣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프레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경청은 아니다.
경청의 핵심은 내가 선택한 것이든 상대방이 제공한 것이든 특정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고 협력하자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인간이 프레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면 우리는 누군가의 프레임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포괄하는 더 넓은 공동체의 프레임을 사용해야 한다. 경청을 위해서는 더 크고 넓은 시각에서 상대와 나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프레임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을까? 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ohn Flavell)은 자기 생각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메타인지 (metacognition)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어떤 프레임으로 듣고 있는지,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할 수만 있다면, 프레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경청은 본인의 노력의 문제가 된다. 평소 훈련을 통해 메타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면 대화 중에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듣기 방식을 점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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